2024년 8월 22일 주일 아침.
예배당으로 내려가는 길,
양손에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비탈진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다.
큰 아이가 말했다.

- 엄마는 마음에 병이 들었어요.
- 엄마가? 무슨 병인데?
- 그건 매일매일 회사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병이에요.

엄마는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일하는 거라고,
모든 어른들은 다 일을 한다고,
여러 설득적이지 않은 말들로 아이에게 대답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아프다.

52개월인데 아직도 아이들은 엄마가 아침에 회사로 떠나는 것이 슬픈가보다.
그날 밤에, 사랑이는 아침에 엄마가 인사도 하지 않고 회사로 떠날 것을 걱정했다.

- 내일은 월요일인 것 알지? 엄마아빠는 너희들이 일어나기 전에 회사에 갈거니까 울지 말고 씩씩하게 어린이집 다녀와야해.
- 그래도 인사는 하고 가야지요.
- 그런데 엄마는 너무 일찍 나가니까, 너희가 8시까지 푹 잤으면 좋겠어.
- 그래도 인사하고 싶은데, 인사하고 가요.
- 그럼 지금 인사하자. 사랑아 엄마 내일 회사 잘 다녀올게. 알았지?
- 네 알았어요.

늘 옳은 결정이라 생각하면서도, 일을 하는 엄마는 매일 마음이 아프다.


2023년 10월, 우리 가족은 2년간 살던 새단지 아파트에서 구축 아파트로 이사왔다.
구축 아파트는 새단지 아파트와 달리 어린이집도 멀고, 킥보드를 마음껏 탈 수 있는 넓은 공간도,
뛰어놀 수 있는 잔디나 바닥분수도, 커뮤니티시설도 없다.
아이들이 어떤 감식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지 모르지만, 세살, 네살을 지낸 새 아파트가 더 좋다고
이사오자마자 여러번 이야기했다.

구축 아파트는 낡고 오래되어, 녹물도 나오고 이곳 저곳 손봐야 할 곳이 많다.
그렇지만 1층에 오래된 내 친정이 있어, 아이들을 맡기기에는 최적의 공간이다.
어젯밤, 소망이가 문득 말했다.

- 엄마, 우리 어린이집 옆에 있는 103동에 언제 살아요?
- 응, 거기 살고 싶어? 그럼 다음에 이사할 때 다시 그 아파트로 이사가면 되지. 소망이가 살고 싶은 곳으로 이사가자.
- 아니요. 저는 지금 집이 좋아요. 지금 집에서 살래요.
- 그래? 왜 지금 집이 좋아?
- 비둘기가 줄 서있는 것도 볼 수 있구, 사과나무도 볼 수 있구, 상추도 볼 수 있잖아요.
- 맞아. 할머니 할아버지댁도 가깝고. 그치?

낮에 경비실 지붕 위에 비둘이 대여섯 마리가 신기하게 줄지어 쉬고 있는 걸 봤는데, 꽤나 인상적이었나보다.
그리고 1층 화단에 엄마가 키우시는 상추나 오이, 대추나무,
아이들이 태어난 기념으로 심은 사과나무의 푸릇푸릇한 열매들이
낡고 보잘것 없는 구축 아파트에 정을 들게 했나보다.

아이들이 발견하는 이 작고 사소한 기쁨을 나도 배워서,
이 아파트를 더 사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