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사마리아 여자와 말씀하시다

1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1)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사람들은 참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다윗이 승리를 거듭할 때 사울과 다윗을 비교했던 사람들처럼, 예수를 요한과 비교하는 사람들. 

2    (예수께서 친히 1)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 바리새인들 귀에 들어갔기 때문에 피하신 것일까? 

: 주석- ”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자들과 침례(세례)요한의 제자들 사이에 일어난 긴장 때문에 그 지역을 떠나셨다. 공관복음서 저자들은 헤롯 안티파스가 침례(세례)요한을 체포해 갔기 때문에 예수님이 떠나셨다고 말한다(참조, 마 4:12; 막 1:14; 눅 3:20).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  이 여자는 마을에 있는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그들이 오지 않는 시간을 골라 멀리 있는 우물로 혼자 왔다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유대인은 사마리아인과 같은 양동이에 있는 물을 마시는 것 조차도 용인되지 않았다(참조, 레 15 장). 예수님은 두 개의 문화적인 장벽을 무시하고 있다: (1) 사마리아인과 말하는 것 (2) 공공 장소에서 여인에게 말하는 것.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 영생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고전15:22, 빌3:9, 딤전1:14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 우리 존재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샘물 - 그것은 하나님과 단절된 우리의 삶을 다시 주님과 이어주는 샘물일 것이다. 
: 구체적으로 이 샘물이 영생인지, 성령인지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 하나님을 모르더라도, 그러한 물의 존재, 우리의 존재론적 갈증을 채워줄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누구나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 먼저 우리의 죄를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죄와 상관 없이, 이미 우리 곁에 와 계신 예수님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 당신들의 말=유대인들의 말. 우리 = 사마리아인. 갑자기 종교적인 질문을 한다. 선지자로 인식해서일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the question was about places, but the answer is about who to worship. 잘못된 질문에 답하시는 예수. 아버지에게 예배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일까? 장소는 다르지만, 사마리아인들도 아버지께 예배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누구에게 예배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는 것을 보니, 아버지가 아닌 다른 것에게 예배한다는 것 같다.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 how to 의 문제.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  Since our God is spirit - the way we worship should be the same way. in the spirit we communicate.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 메시야심을 밝히시는 주님.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 왜 묻지 않았을까?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 왜 이것을 양식으로 비유하셨을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먹는 것보다 중하며, 매일매일 밥을 먹듯 해야할 일이라는 것일까?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 잘 이해가 안간다. 거두는 자란? 제자들? 삯이란? 하나님이 주시는 댓가? 영생에 이르는 열매란? 
: 뿌리는 자는 누구고 거두는 자는 누구인가? 각기 다른 일꾼들인가?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 당시 사마리아인들과 대화도 안했던 유대인의 습성을 따지자면, 사마리아 마을에서 이틀동안 함께 자고 먹고 했다는 것은 엄청난 파격이었을 것이다. 

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 예수와 함께하며, 사마리아인들 각자가 직접 예수로부터 말씀을 듣고, 교제하고, 세상의 구주되심을 믿었다. 
: 여기서 보면 사마리아 여인은 또 다른 심는 자였던 것 같다. 

: 내가 누군가에게 예수를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예수를 알리고 전하는 것은 나의 몫이지만, 결국 그들이 친히 예수의 말씀을 듣고 개별적으로 구주되신 예수를 알도록 해야 한다.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시다(마 8:5-13; 눅 7:1-10)

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44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 갈릴리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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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2)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  이것은 사실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혹은 책망의 말씀일까? 

: 유대인은 표적을 구했다(참조, 2:18; 6:2, 30; 마 12:38; 16:1). 그러나 여기에 나오는 헤롯의 하인은 표적이 주어지기 전에 믿었다.

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2)표적이니라

: 갈릴리에서 가나의 혼인잔치 이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다. 표적이 있을 때마다 많은 이들이 믿었다. 필요하실 경우, 표적을 일으시킨다. 
: 많은 이들이 표적을 구했을텐데, 왜 이 왕의 신하에게 베푸셨을까? 그가 '믿고 갈 것'을 아셨기 때문일까?

: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아들을 살리고 싶어하는. + 믿음을 보시고 하신 것일까. 


1. 성경에 있는 이 두 가지 이야기. 사마리아 여인과 갈릴리의 왕의 신하의 이야기로부터 내게 주시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사마리아는 척박한 땅, 오늘날로 따지면 게토와 같은 지역이며, 분리된 '천한 자'들이 사는 땅이었다. 그곳으로 가서, 함께 유숙하시며 머무셨던 예수의 발자취를 생각한다. 

갈리리는 12제자 중 11제자를 택하신 곳이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기피의 대상이자 멸시를 받던 갈릴리. 예수님께서는 제의 언어인 히브리어, 일상 언어인 아람어, 갈릴리 사투리도 구사하셨을 걸로 짐작된다.
: 왜 이렇게 갈릴리에 집중하셨을까를 고민해보았는데, 실제로 이스라엘의 유대지방, 사마리아지방, 갈릴리 지방 이 3군데 중에서 다니시지 않은 곳이 없다. 다만 유대는 예루살렘으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상징적인 곳이고, 당시 종교적 중심지이기도 했다. 사마리아는 이방인의 공간이지만 여전히 가셨고, 갈릴리가 아마도 더 편하셨을것 같다. 나사렛(고향)이 있는 곳이기도 해서 자신을 잘 아는, 그 지방언어를 구사하는 동네시기도 했다. 

 '이방의 갈길리에 먼저 복음이 전해질 것을 암시한 이사야의 예언 (이사야 9:1) 도 있었지만, 예수님께는 자라오신 30년의 공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 낮은 곳에서 나신 예수님은, 그 주변에서 동역자들을 찾았고, 그 주변에 있는 자들을 돌보셨다. 


2. 오늘 내가 찾아갈, 그리고 특히 이번 주일에 뭇별로 찾아갈 교회나 공동체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

: 나의 나사렛, 혹은 나의 사마리아는 어디일까. 내가 기피하는 곳, 혹은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곳.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고, 오히려 피해서 돌아가는 그곳. 그곳에 나는 비단옷을 입고 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오히려 물 한그릇 달라고 (help me) 친근한 말 한마디를 걸기도 하고, 함께 거하며 예배하고, 삶에 대해 물어보고, 그 삶에 마르지 않는 물인 예수를 전하는. 그런 주일이 되기를 소망한다. 

: 나의 갈릴리는 어디인가? 나의 가족, 내 삶의 터전, 내가 일하는 곳, 전문영역, 내가 발 딛고 있는 땅.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 (마 4:14-16)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서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 이 세 지역으로 분할되어 통치받았다. 헤롯 대왕의 아들인 헤롯 안티파스가 통치했다. 예수님의 사역, 복음과 가치는 지역 출신 성분과 이로 인한 수치스런 열등감에 휩싸였던 갈릴리 사람들의 존재에 대한 자기 각성을 가져왔다. 자기와 타자에 대해 전인적(영, 혼, 육)인 존재로서의 주체성을 깨닫게 하고 세워 주었다. 그것은 자기와 타인에 대한 의식의 대전환이었고 존재 혁명이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 4:23)

예수님은 특별히 회당에서만 메시지를 선포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로든 향했다. 때로는 자연환경을 비유로 삼아 쉽고 간결한 가르침을 전했다. 그 결과 갈릴리 사역을 통해 수많은 자들이 그분을 영접했고, 동시에 예수님의 세력을 시기하는 기존의 종교 기득권층들의 반발로 갈등과 대결국면은 점차 확대됐다. (요 5:16, 8:40, 11:48).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의 등장과 그가 할 중대한 일을 위해 길을 예비할 자가 나타난다고 예언했다. 바로 선지자 요한의 이야기였다. 요한은 광야와 사막에서 메시아의 출현과 회개,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선포했다. 이 준비하는 자가 있어야 할 곳은 광야와 사막이었다.

이 장소는 바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볼 수 있는 장소이다. 사명자는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수용하고,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선포하고 목격한다. 오늘날에도 현재 처해 있는 신앙의 기초가 광야와 사막이라면 은혜이다.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모든 것을 다 가진자이다. 이를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준비하는 자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사 40:3-5)

세례요한이 선포한 메시아, 예수님의 출현과 메시지 선포는 기득권층인 종교 권력과 크게 충돌한다. 그의 복음과 하나님나라 선포에 대해서 위기를 느끼고 이를 대적한 세력들은 크게  다섯종류의 권력이었다. 제사장(마 21:45), 바리새인(마 22:15), 헤롯 당(마 22:16), 사두개인(마 22:23), 율법사(마 22:25)였다.

유대교의 근간을 이루는 율법주의적인 교리들은 주로 이 바리새인들과 한 종파인 서기관들, 즉 율법사들이 제정하고 가르쳤다. 외적으로는 윤리적인 완성을 추구했고 많은 백성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내면과 종교적 동기를 보시며  비판하셨다.

특권과 타락한 종교 권력, 세례요한의 회개 선포와 예수님

'회칠한 무덤'이란 바리새인들을 생명이 없는 '걸어다니는 시체'로 비유하신 것이다. 위선적 신앙을 비판한 대목이다. 이들은 자신은 행치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행할 것을 요구하며, 사람들로부터 높임 받기를 좋아하며 자신의 의를 나타내 보이려고 애썼다. 이런 사람들을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라고 지칭한다.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부른다 (창 3:15, 마 3:7). 그들이 장차 예수님의 증인인 제자들을 박해하고 죽임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된다고 한다. 이전에 악한 백성들이 선지자들을 죽인 모든 죄과에 대해서 징벌을 담당하게 될 것을 선언하신다.

유대교파 중 바리새파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지도자층이 많았다. 대표적 인물은 바울, 가말리엘, 니고데모이다. 이들은 엄격한 율법 준수자로 자청했다. 그리고 사두개인들이 성전을 지배하는데 반발하여 회당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회당은 백성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부활과 내세를 인정했고, 돈을 좋아했다 (눅 16:14).

서기관은 율법사, 랍비,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일반 서기관은 주로 문서를 담당하는 관리였다. 그들은 대부분 바리새인 출신이고, 그들과 경쟁적 관계에 있던 대제사장 계급은 대부분 사두개인이었다. 서기관들이 바리새인파에 대하여 사두개인들은 제사장직을 관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세오경만 읽었으며 영혼의 존재, 부활과 내세를 부정했다.

사두개인의 어원은 '사독'이다. 제사장을 뜻한다. 또한 바리새인들은 주로 율법사로 일하는데 레위인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유대교파 중 사두개파는 세상과 연합해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헤룻궁이나 로마인 집정관들과 연합해서 정치적 권력을 소유한 집단이다. 성전을 장악하여 종교 활동을 했다. 이들은 구약의 율법에 천착하며 기득권 지키기에 혈안이었다. 모세오경만을 인정했기 때문에 성경에 명백하게 기록되지 않은 유전은 인정하지 않아 바리새인들과 자주 충돌했다.

예수님 시대에 종교의 타락을 엿볼 수 있다. 서기관들은 종교를 이용하여 과부의 가산조차도 자신들의 지식과 지위를 이용하여 착취했다. 초대교회의 경우, 연보는 주로 예언자들과 교사들을 대접하거나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사용하였다. 성전 봉사자에 대한 재정 보조적인 성격과, 교회 공동체의 상호부조 및 자선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예수님 당시에 이미 유대교 안에서 종교세적 성격으로 걷었던 십일조와는 별개로 자율 헌금 제도이며, 초대교회 공동체도 이 제도를 수용하였다 (고전 16:1-2).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가라사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막 12:38-44)

유대인 속에는 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 사두개인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성경과 율법의 비밀을 잘 알았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바리새인, 율법사들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16장 12절에서는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했다. 이들은 강렬한 반감을 품게 되었다. 결국 예수님은 바리새인, 사두개인들, 율법사와 서기관들에 의해 십자가 처형을 당하게 된다.

예루살렘은 종교 중심지였고, 메시아 운동의 적절한 무대였다. 대중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지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갈릴리로 향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방향이었다. 그것은 하나님나라 운동의 또 다른 전개 방식이었다. 그 새로운 질서의 전개, 변혁의 근원, 영적 질서의 대전환기의 지점, 그곳이 바로 갈릴리였다.

역사적으로 갈릴리 백성들은 그들의 생각이나 인격, 삶이 아니라 지역으로 범주화되고 판단되었다. 그들은 예루살렘과 떨어진 소외 지역, 이방인들이라는 범주 존재에 의해 구속돼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갈릴리 사람들과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운동은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존재적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

메시아를 바라는 백성들의 관심은 달랐다. 민족적 대망인 메시아가 도래할 곳은 갈릴리가 아니라 찬란한 도시인 예루살렘 성도(聖都)였다. 그러나 갈릴리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의 생애에 3대 고난과 고통이 있었다.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신 후에 마귀에게 시험당하시던 고통,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와 같은 땀을 흘린 기도의 고통,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고통이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예수님은 미리 앞일을 아셨다. 그래서 사랑하는 제자인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피같이 흐르는 결사적인 기도를 드리고 각오와 결단을 하신다. 그러자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눅 22:43).

갈릴리 사역을 마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그곳에서 제자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 대적들의 손에 팔리셨고(마 26:15-16), 로마 총독 빌라도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고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마 27:11-26). 하나님의 독생자(the One and Only)이시며, 죄인들의 구주로서 사람의 모양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그가 십자가에서 운명을 다했다.

타락한 종교 권력과 시대를 극복, 갈릴리 예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5-6)

이로 인해 제자들은 흩어졌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흩어진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몸을 나타내 보이셨다(마 28:1-20). 신앙의 예수님은 '메시아', '태초의 말씀',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본다. 십자가 처형에도 불구하고 약속대로 부활이 성취되었다. 제자들은 부활의 권능을 힘입고 또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바,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의 은혜를 통해서 순교까지 불사하면서 하나님나라 확장 사역에 임하게 된다(행 1:6, 2:47).

예수님은 유대교의 중심이었던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기록이 있으나 대부분의 생활은 주로 이스라엘의 변방인 북쪽 갈릴리 지방에서 활동했다. 갈릴리 지역 나사렛 동네에서 자랐고 30년의 지상에서의 삶을 이곳에서 사셨다(눅 2:39-51).

3년 동안의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은 갈릴리의 가버나움으로 이전하여 이곳을 복음의 전진기지로 삼고(마 4:13)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으로 왕래하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하며 사역하셨다(눅 23:5). 이 덕분에 갈릴리라는 변방의 사람들은 이사야의 예언대로(사 9:1-2) 유대지역의 기득권과 전통에 묶여 있던 유대인들보다 먼저 예수님을 알아보고 영접할 수가 있었다(마 4:12-16).

신약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자신의 권세를 세상의 질서에 부합하려고 하지 않았다. 저항이 아닌 새로운 메시지의 선포였다.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며 세상의 통치에 대립하는 예수님은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은 세상의 질서와 다른 것임을 선포했다. 누가복음은 성령이 어떻게 예수님을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이끌었는가를 말해 주고, 사도행전은 어떻게 교회와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전파되어 갔는가를 언급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원 사역과, 그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시는 화해 사역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매우 상징적인 행보로,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를 지나가셨다.

사마리아는 유대와 갈릴리 사이에 놓여 있던 지름길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렇게 가까운 길을 두고도 사마리아인들을 피하려고 더 먼 길을 택했다. 기존 관습과 차별의 벽을 무너뜨리시는 상징적인 행로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복음은 민족, 성별, 계층과 신분, 경계를 초월하고 극복한다. 예수님의 초점은 사역의 목표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 일을 온전히 이루려는 의도로 유추한다.

사마리아는 앗수르와 이방 민족들의 잦은 침략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경원시했다. 순수 혈통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7장 11절에 보면,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라고 되어 있다. 사마리아를 관통하던 예수님은 수가성 여인을 만나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복음을 전했고 마침내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처형을 감당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 1:20)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 그의 고난을 예언하면서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마 26:32)라고 전했고 부활 후에는,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무덤에서 만난 여인들에게도 "형제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전하라"고 명하셨다.

교회와 세계 변혁의 기원과 그 지점, 갈릴리 예수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go)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baptize)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teach) 지키게(make disciples)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 18-20)

기독교는 예수님을 따르는 소수의 제자들, 특히 베드로와 바울의 선교를 통해서 지중해에서 세계종교로 발전했다. 예수님은 유대교의 중심이었던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기록이 있으나 대부분의 생활은 갈릴리 지방에서 활동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직계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 등을 중심으로 하여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사도바울이 등장하면서 기독교는 세계종교로 발돋움하게 됐다.

갈릴리 예수님의 중요한 의미는 복음의 핵심이자 신앙과 사역, 리더십의 롤모델이다. 소년 예수, 청년 예수는 갈릴리 바다에서 천국 복음을 선포했다. 3대 사역인 전도와 교육과 치유 사역의 현장이었고 사역의 원형이었던 장소였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국가나 사회적으로 인간소외나 지속적인 차별과 배제의 상태에서는 공동체 내에 냉소와 무관심, 불안과 공포, 갈등이나 폭력을 초래하게 된다. 성경이 대안이다. 가장 낮은 신분들, 아니 부자나 가난한 자나 신분의 귀천이 없이 모든 죄인들, 창기와 세리, 소외된 사람들을 사랑하고 함께했던 갈릴리 예수님의 길이 구원의 길이요, 진리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다. 이 시대 교회변혁의 길이다.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은 3가지로 정리된다. 그것은 치유와 기적과 축제(밥상 공동체)로서의 하나님나라의 생명운동이었다. 오늘의 현실에서 과거의 갈릴리 예수와 맞닿아 있는 그 기원과 지점, 복음의 근원을 드러내야 한다. 오늘의 시점에 과거의 기록을 되살려야 한다. 곧 그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믿음의 진보이며 변혁 운동이다.

길 위의 인간, 그 구원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황준배 / 목사 · <기도와 크리스천 리더십> 저자 (부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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