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임 나눔 > 24절-베스도: 너의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학문=(letter). 갇혔을때 바울이 미친듯이 편지를(=사역) 쓴 것을 보여줌. 한결같은 바울의 모습.

-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한 것은(=그냥 기독교가 이단이라고 하고 무시하면 되는데) 죽이기까지 하려고 한 것=앙금. 마음의 앙금에서 시작된 일이기 때문. ->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지켜야 한다. thru 말씀. 

바울의 이야기: 예수를 만나기 전/만남/이후가 전세계와 왕 앞에서도 계속 이야기되는 것= 나의 삶도, 아무리 부끄러운 삶이었더라도 예수를 만나기 전/만남/이후의 삶 전체가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되기를. 그렇게 아름답게 나의 삶을 전체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선. 
18절-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 우리의 삶은 이러한 미션과 유리된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구절 보면서 정신 차리자! 라는 마음이 듦. 

*소망* 7절- 소망의 의미는 무엇일까?=부활에 대한 소망(이전 장에서 나타난)

*왕 앞에서*
- 청와대에서 조찬-왕 앞에서 이야기를 조리있게 하는 바울이 대단하다고 느낌: 그의 모든 재능, 학문을 모두 아울러서 조리있게 이야기 하는 것의 대단함, 그리고 왕 앞에서 아부하지 않는 담대함.
- 사회 개혁적인 기독교, 바울=너무나 변화, 사회 개혁, 이미 고착된 구조의 전복을 싫어하는 기득권을 보면서

20절-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 이건 우리 삶에서 어떤 형태로 드러나야 하는가?

32절-석방될수 있을 것 같다는 안타까움- 그러나 바울의 입장에서는 죄수로 갇혀있기 때문에 계속 보호받을 수 있는(의식주) 것. =>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볼때, 어떠한 환경은 믿는 자들이 볼 때는 너무나 좋은환경, 세상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비참한 환경. 또는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가에 믿음의 눈이 중요. 

*전도: 전도는 너무나 나에게서 먼, 여기에 달란트 있는 사람의 일로 생각하지 않았나.
이걸 듣는 왕, 베스도의 반응=전도할때 우리가 받는 반응. 줄기세포 교수가 연구를 하면 할수록 신이 있다는 믿음-복음을 전함. 교회를 다니게 되심. 
예정론에 대한 토론 -구원될 사람은 정해있을지 몰라도, 우리의 책무는 전하는 것. -> 우리의 역할은 단지 도구인 것. 그 다음부터 "전할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 
그 "준비" = 성경지식이나, 특정 말이 아닌,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다. 
성공지향적인 간증이 불편한 이유= 롤모델이 필요한것이 아니라, 위로다. 나같은 죄인인데, 하나님이 그 삶에 일하시는 모습, 그러면서 하루하루를 겨우 견디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 것. 

- 복음=너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드라마를 주변인에게 소개하듯, 내가 경험한 바를, 기쁨으로 전하는 것. 

*죄목을 못찾았다고 하는데, 항소를 해서 결국 황제께 옮겨짐-> 1) 무슨 죄목으로 갔을까? 정치범(소동)으로 보내지지 않았을까? 역사적인 기록은 어떻게 남았을까? 어떤 죄목으로 참수형을 받았을까? 죽기 전에 황제 앞에서 어떤 말을 하고 죽었을까?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는데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제 26 장 - 바울이 변명하다(행 9:1-1922:6-16)


1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2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3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4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5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6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7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 바울의 이야기= 다른 왕국에 대한 이야기. 왕 앞에서 지켜야 할 선을 지키면서 소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만, 내용은 엄청난 왕국에 대한 이야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초라한 왕.
* 4절: 젊었을 때의 삶. 10-12살때 가말리엘, 지적 리더에게 배우고, 벌써부터 리더가 된 자. 어렸을때부터 택해서 훈련시킨 자. 
- 모세, 요셉, 야곱, 다윗 모두 젊어서부터 선택, 사용하심. 
- 교육?= 이들의 인생 가운데 제대로 교육받은 자는 모세만 있음. 이 시대에도 바울/바나바 정도만 정규교육을 받은 자. 필요조건이 아님. 
- 공통점= 고생. 그러나 고생하고도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 많다. 공통요소지만 필요충분조건이 아님. 
> 이들을 젊어서부터 택해서 훈련시킨 것은 나중의 삶을 보고 거꾸로 유추한 것이지, 다른 자들과 특별히 다른 것이 없다. 
> 공통점? 마음의 중심. 바울이 사울일 때도, 마음의 중심은 선했다. 
> 야곱의 경우, 욕심이 있었지만, 장자의 축복- 하나님에 대한 신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 
>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 - 사무엘에게 이야기 하신. 

중심=heart.
- 사람이 하나님 앞에 마음을 바로 지킬 수 있는 방법?
1. 하나님에 대한 가장 기본적 이해가 비뚤어지지 않은 상태여야 한다. 
-> 이 이해가 잘못돼있다면, 이세상에서 그가 체험하는 모든 것이 신앙의 '악'이 될 수 있다. (동행하시는 하나님=모든 것을 잘되게 해주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면, 고난을 당할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할 것)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동일하지 않다. 
- 신명기에서 '지식에서 떠나지 말라'는 말은, 역사에서 경험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그 삶을 지배할만큼 생생하지 않다는 것. 깊게 경험했더라도, 우리의 삶과 관계가 없을 수 있다. 
- 내가 하나님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 할 수 있더라도, 그것이 내 삶과 유리될 수 있다. 
- 아주 적게 알더라도, 삶에 살아있다면, 그사람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면, 산소망이 됨. 

2. 우리 마음에 유혹이 없어야 한다. 
유혹에 빠지기 쉬운 우리. 우리 안에 이 유혹이 있다면.  
- 마음의 유혹: 헤롯- 이 땅에서 추구하고 싶은 부, 명예, 이것을 추구하기 위해 악을 행함
- 우리 안에 거룩한 목적이 있더라도 그 안에 '자기'가 있다면, 마음에 유혹이 생김. 

예)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확장되는 것을 경험하고 싶다라는 소원이 있다면, 거룩한 포부처럼 보이지만, 그 확장/공의가 이루어지는데 '내가 중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마음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마음에 내가 없고, 하나님만 남아있는 사람. 만약, 그 포부가 있다면, 아그립바 왕과 다를 것이 없다. 

3. 긴장하고 있는 것.
- 너의 마음을 모든 근면을 통해서 지키라 (구약) 항상 깨어있으라 (신약)
- 우리는 깊이 경험/체험하고 있으니 중심이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착각이다. 
- 늘 우리는 죄성에 둘러싸여있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넘어져있을 수 있다. 

Reprobation - 칼빈이 확대시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중심이 바로된 사람이 살다보면, 이 사람의 삶을 통해 점점 더 선한 삶을 살게 되고, 아니면 점점 더 악을 행하는 삶이 됨. 

바울은 중심이 올바로 서있었던 사람. 예수를 알기 이전에도 예수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그 이후에도 예수를 위해 핍박받을 수 있는 사람. 

이 모든 역경이 중심이 바로 서있는 자는 성화시켜서 거룩한 사람으로 만든다. 중심이 바로 서있지 않으면, 모든 경험이 독이 돼서 그 사람을 찌그러뜨림. 
= 스데반 사건. 쓴뿌리가 될 수 있었을텐데. 
= 하나님은 이것을 성화시키셔서,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는 도구로 쓰심. 
= 억울하게 묶임받았을 때, 반응=스데반
= 앙심이 없는 바울의 모습. 우리 안에 어떠한 충격이 성화되지 않으면, 건드릴때마다 폭발하게 됨. 건들때마다 직간접적으로 드러나게 됨. 독이 품어나오지 않는 바울의 모습. 

중심이 서 있는 사람들이라면, 앙심이 없음. 
성화되지 않았다면, 이자의 인생은 간증이 될 수 없었을것. 

만약 내가 '잘돼서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안에 앙금이 남아있는 것. 


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3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1)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받아들여야
1) 왜 이 가시채 이야기를 이제서야 add 하는가? -> 느낌으로만 왔는데, 이제서야 이해를 한 것. 
2) 이 전, 소리만 듣고, 빛은 못봤다고 함. 22장: 아무소리도 못듣고 빛만 봤다고 함. 왜 말이 바뀌는가? -> 나름의 이해. 정신없는데, 그 당시 말에서 떨어지고 눈이 멀고 하는데 주변상황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을까? '너 그때 소리 들었니?' 하면서 확인하기 어려웠을 것. 이후에 차차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시 이해하게 됐을 것. 

나도 어떤 것을 경험했는데, 그것을 깨달아지는 데 몇년이 걸리기도 함. 왜 그때 이해됐는가? 아직 이해할 수 있을만한 경험, 이해가 부족했을 것. 

 
15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 종(사환)- 배 밑바닥에서 북소리에 따라 노 젓는 사람=바울이 스스로를 설명하는 방식
. "일어나라 너의 발로 서라" - 앉은뱅이. 38년된 병자. 네 병이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어보심. 
: 우리가 어려운일을 받아서 낙심할 때, 주저앉아있어도 될 핑계 때문에 좋아하기도 함. ex)병가. 
: 38년된 병자는 불편하지만, 일 안해도 되는 이유가 있음. 
: 나태해지고 싶고, 물러나고 싶고, 편하게 살고 싶어하는 면이 있음.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비겁한 자가 되고 싶은데 그렇지 않으려면 정당화하려는 사건을 찾음. 
: 그래서 묻는 것. 바울에게 먼저, 네가 먼저 일어나라.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20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21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전도하다

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2)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이 이르되 3)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 = 우리가 원하는 바를 가지고 그를 보면, 비참함. 그러나 그가 말하는 나와 같이 된다는 의미=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우리의 삶을 예수님께 의탁하는 삶. 하나님의 안으로 들어가서, 내 모든 희로애락에 대한 감각 마져도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나라로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그런 하나님을 신뢰하고, 내 자신을 내던지는 삶.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 연단받으려면 고난받아야 하니까 싫어한다. 
고난 받고 안받고는 우리가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든 그렇지 않든 상관 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하나님의 선한 의도, 끊임없는 사랑에 우리를 의탁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dimensional shift. 이 땅에서 살아있는 동안 가능한 이유=예수님이 돌아가셔서. 

30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갈등 속에서의 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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