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언어
#1
2024년 5월 15일 저녁
침대 위에 서서 폴짝폴짝하는 사랑이가 침대 앞에 서 있는 엄마를 보고 활짝 웃으며 하는 말.

엄마! 엄마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내가 엄마를 사랑하니까요!
엄마 아무것도 하지말고 가만히 있어요!

그러곤 한바퀴 핑그르르 돌고 말한다.

엄마 사랑해요!

나는 그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을 뿐인데,
아이의 말은 내 존재에 위안을 준다.
그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
그 자리에 있는 것.

나도 너에게 그렇게 대하길.
미래의 너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정말 그저 사랑하기에,
그대로 있으라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그런 엄마로 남아있길.
너의 이 큰 사랑에, 같은 마음으로 응답하길.


#2
2024년 5월 16일
동네 작은 놀이터에 저녁식사를 마친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갔다.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저녁식사를 했고, 마침 놀이터에 가는 아이들을 집 현관에서 마주친 것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돌아온 복장 그대로였다.

한참 놀던 사랑이가 말했다.

엄마, 지구가 아프대요. 엄마도 알고 있어요?
- 그럼 엄마도 알지.
사람들이 쓰레기를 아무데나 마구 버려서 지구가 많이 아프대요. 그러니까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면 안돼요 알았죠?
- 응 그래 그럴게.
엄마가 회사에 가서 회사 친구들에게도 모두모두 말해줘야해요. 지구가 아프다고.
- 그래 그럴게.

그러곤 지구가 왜 아픈지에 대해 자꾸자꾸 물었다.
사랑이는 지구가 정말 걱정이 되는 것 같다.
나도 아주 작은 꼬마였을땐, 지구를 걱정했던 것도 같은데. 그 순수한 마음은 어디로갔을까.

그러곤 잠들기 전 침대에서
사랑: “엄마 사랑해요! 정말정말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요!”
”어머~ 너무 고마워 사랑아. 엄마도 사랑이 사랑해!“

소망: “엄마 예쁘다. 엄마 정말 예쁘다!”
“어머~ 고마워  소망아! 우리 소망이가 더 예뻐.”
사랑: “엄마 정말 예쁘다!! 수박만큼, 참외만큼 예뻐요!!”

나이가 들수록 외모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포기했는데,
우리 아이들이 나를 예쁘게 생각해준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3
2024년 4월 29-5월6일까지 스리랑카 출장
돌아와서 나를 보고 소망이가 한 말
“엄마가 없는 동안 엄마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엄마가 아프면 어쩌나~ 걱정도 많이 했어요. 보고 싶었어요.”

꽃을 꺾어와서 하는 말
“엄마는 꽃을 좋아하니까 꽃을 보고 엄마 생각이 나서 가져왔어요. 엄마 마음이 감동적이에요?”

한마디 한마디가 참 사랑의 말들이다.
나도 너에게 사랑의 말들만 내어주길.


#4
2024년 5월 11일
양평집에서 밥을 조금 하려다가 물을 잘못 잡아서 그만 죽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아가들은 죽을 싫어한다.

“어쩌지? 밥이 죽이 되어버렸어 ㅠㅠ 어떡해~~”
최대한 물기가 적은 부분를 덜어 아이들 식판에 덜어주었다. 소망이는 처음엔
“내가 싫어하는 죽이네~ ”

그러다가
“엄마 괜찮아요. 처음 먹어보는 맛이니까 맛있을거예요.”
라며 위로를 해준다.

그러곤 한입 크게 먹고
“음~ 맛있네~~ 맛있어요 엄마! ” 라며 날 격려한다.

밥이 맛없어져서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위로할만큼 컸구나 우리 아가.





#1
금메달
어린이집에서 가족운동회를 했다. 우리 아기들이 경험한 첫 운동회이자, 나와 남편도 부모로서 참석한 첫 운동회다.
운동회를 마치고, 선생님이 모든 아이들에게 금메달처럼 생긴 초콜렛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소망 - “드디어 금메달을 받았네”
사랑 - “이거 내가 항상 받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데 선생님이 나는 안줬어요. 이제 받아서 너무 기분이 좋아요.“

학기 초, 어린이집에 출강하는 외부 영어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말을 잘 들은 학생들에게만 한 달에 한 번, 금메달 초콜렛을 걸어주었다.
사실 우리 아이들은 집에서 초콜렛을 먹이지 않기에 그 금메달을 너무나 갖고 싶어 했고, 집에 와서도 내내 자신은 받지 못했다며 속상해했었다.
행동조절이 잘 되고, 훈육이 잘 되는 아이들을 위한 보상기제로서의 금메달 초콜렛은 그 모양도, 맛도 너무나 매력적인 것이었다.
게다가 ‘금기’의 초콜렛을 선물로 받는다니. 나는 어린이집에 초콜렛을 상으로 주는 것에 대해서도, 그리고 한 반에서 말 잘들은 한 두 명을 선발하여 상대적 박탈감을 갖도록 하여 아이들을 ‘앉아있게’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러나 외부 강사의 행동인데다, ”아이들도 보상을 배워가야죠“라고 하신 선생님 말씀을 듣고는 관점이 너무 다른 것 같아 더이상 어린이집에 가타부타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강사가 아이들과 약속한 것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한 점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3세 아이들이 어떤 약속을 했을까? 강사의 말에 동의한 것이겠지)

그런 아이들이 드디어 초콜렛 금메달을 받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반년이나 되는 기간 동안 아이들은 금메달을 기다리다 ”드디어“ 받게 되었다면 기뻐하는 순간이 조금은 씁쓸했다.


#2
2024년 6월의 첫주말
사랑이가 화장하는 엄마를 보며,
- 엄마 너무 예뻐요. 엄마 공주님 같아요. 이제부터 엄마는 하트하트뿅뿅이라고 불러야겠다!

오래오래, 너의 눈에 엄마가 공주님이었으면 좋겠다.

 

#3
6월 6일 
둥이들은 어렸을적부터 나름의 캐릭터를 찾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애착인형으로 유명한 토끼 인형을 침대에 두었지만, 결국 사랑이는 곰돌이 인형을, 소망이는 구름 쿠션을 선택했다. 잘 때마다 옆에 두고 자는 이 두 캐릭터는 이제 수면시간에 없어서는 안될 애착인형들이 되었다. 

요새는 자기 전에 잠자리를 정돈하는데, 이걸 나름의 "집 짓기"로 명명한다. 
곰돌이 나라, 구름이 나라를 만들어 그 안에서 잔다고 생각하고 있다. 

총 네 마리의 곰돌이를 저마다의 자리에 배치하고, 
구름이 또한 벽에 가지런히 세워두는데, 부모라도 잘못 건드렸다가는 자신의 '나라'를 침범하는 적군이 되고만다. 그만큼, 곰돌이와 구름이에 대한 애착은 강하다. 

어느날 밤, 자기 전에 기도를 하는데 소망이가 사랑이를 위해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사랑이가 죽으면 사랑이 곰돌이도 하늘나라에 같이 가게 해주세요. 예수님이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그러자 사랑이도 
"하나님 아기곰돌이도 죽으면 하늘나라에 같이 가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라며 따라서 기도한다. 

이제 조금씩 죽음과 삶,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되는 아이들은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가족들과도, 친구들과도 이별해야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더니 곰돌이 인형과 떨어질 것이 걱정되었나보다. 

소망이는 구름이에 대한 애착이 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의 애착보다 사랑이의 곰돌이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보였나보다. 

매일 밤, 분유병에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곰돌이를 안고 마셔야 하는 사랑이. 
그리고 그 사랑이의 애착 곰돌이가 천국에서도 사랑이 품에 있기를 함께 기도해주는 소망이의 마음이 
참 귀엽고 사랑스럽다. 

 

#4
6월 12일
소망이가 잠들기 전, 제주도로 출장을 간다는 엄마에게 랫서팬더를 엄마 가슴 위에 올려두며
- 이건 엄마 선물이에요. 엄마 생일선물이에요. 랫서팬더 들고 제주도에 가요. 그럼 내 생각이 날거에요. 하나님이 엄마 마음속에서 내 생각이 나타나게 해줄거예요.

가끔 아이들이 출근하는 나에게 작은 선물들을 준다.
인형이기도 하고, 엄마를 그린 그림이기도 하고, 작은 공룡 장난감이기도 하다.
그런 마음이 참 고맙다. 가서도 자신을 생각하라는 마음이, 참 일하는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한다.
조금 떨어져있지만, 엄마는 금방 너에게 달려갈게.


#5
6월14일
잠들기전 사랑이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하나님에 대해 잘 알아요?
ㅡ그럼
그럼 하나님에 대해 말해주세요.
하니님읔 우리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시지.
그리고요?
이 세상을 만드셨지
그리고요?

그러더니 자신도 한마디씩 거든다.
하나님은 우리를 제일 사랑해요
내가 하나님은 동물도 만드셨지 - 라고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고 계세요. 하는 식이다.
내말을 그대로 복사하기도 하는 아이의 말을 들으며, 그렇게 부모의 신앙과 세계관이 아이들에게로 닮아가는구나 싶다.


'일상 > 육아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년 2월 그리고 3월, 사랑의 언어들  (0) 2024.08.07
2024년 5월, 사랑의 언어들  (0) 2024.08.07
2024년, 7월의 에피소드들  (0) 2024.08.07
2024년 7월, 51개월 둥이의 언어  (0) 2024.07.08
Baby words  (0) 2024.04.21


2024년 7월, 무더운 여름날의 언어들
하나.
할머니가 기르시는 사과나무에 푸릇푸릇한 사과들이 열렸다. 처음에는 대추만하더니, 이제는 제법 아기들 주먹만큼 커졌다.
나무에서 열매 따기를 좋아하는 사랑이와 소망이는 언제쯤 사과를 따먹을 수 있을지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다.
그럴만하기도 한 것이, 사과나무가 일층인 할머니 집 거실에서도 보이고, 어린이집을 오가면서도 보이는데 손은 닿지 않으니
시선이 갈 때마다 맛보고 싶고 따고 싶기도 한 것이다.

그러다 결국 아직은 연두색인 사과를 따서 맛보았다. 처음엔 떫더니, 볕을 좀 받은 사과들은 벌써 달콤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사과가 익을때까지 기다려보자며 말씀하셨다.
“소망아, 사과는 빨갛게 익어야 맛있는거야. 더 익고 나서 따먹어야지.”
그러자 소망이가 한 말.
“할아버지, 이건 청사과라서 초록색이에요. 할아버지가 착각하신거 아니에요?”

벌써부터 청사과와 일반 사과를 구별하고, 할아버지가 ‘착각’한 것 아니냐는 (어렵게 말하자면 할아버지의 인지적 오류를 지적하는) 소망이의 말에 온가족이 빵터졌다.

둘.
소망이가 더운 여름 저녁, 빤히 나를 보다 말한다.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정말? 왜 눈물이 날 것 같아?”
“엄마가 너무 예뻐서요”

어린아이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일까.
일도, 집안일도, 육아도 다 완벽하지 못한 것만 같아 아등바등 사는 나에게,
그리고 어느덧 거울에 비친 스스로에게서 세월의 흔적이 보일 때 속상하기도 한 나에게,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들을 하는 아이가 참 고마웠다.

셋.
여름성경학교를 다녀온 사랑이와 소망이는 찬양과 말씀이 꽤 인상적이었나보다.
집이나 차에서 늘 만화 주제곡을 틀어달라고 하는 아이들인데, 여름성경학교 전후에는 새로 배운 찬양을 틀어달라고도 한다.
그러더니 사랑이는 자기 전,
“엄마가 하나님한테 모기가 물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줬으면 좋겠어”라고도 하고,
수족구에 걸려 열이 많이 난 어느날 밤에는
“엄마, 내일 아침에는 목에 난 구멍들이 다 사라지라고 하나님한테 기도해주세요”라고도 한다.

조금씩, 아이들이 세계를 보는 관점에 하나님이 자리잡는 것 같아 기쁘다.



'일상 > 육아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년 5월, 사랑의 언어들  (0) 2024.08.07
2024년 6월, 사랑의 언어들  (0) 2024.08.07
2024년 7월, 51개월 둥이의 언어  (0) 2024.07.08
Baby words  (0) 2024.04.21
2023년 11월 1일 사랑이의 한 뼘 큰 투정  (1) 2023.11.0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