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내용은 개인적인 성경공부 과정에서 정보를 스크랩한 것입니다. 단락마다 출처 주소가 있습니다.]

 

아말렉(Amalek)


팔레스틴 남방 광야에서 시내 반도까지의 땅.

아말렉 족속 사람은 에서의 손자로 유목민이며 이스라엘을 괴롭혀 오던 약탈자들이었다.

1) 엘람왕 그달라오멜에게 정복당한 일이 있다(창14:7).
2) 에서 자손의 거주지(창14:7).
3) 이스라엘 백성이 애담에서 나와 르비굽에 있을 때에 아말렉과 대적하여 具모세가 팔을 들어 격파하였다(출17:8-16).
4) 가나안에 갔던 12정탐군중 10인 불신의 보고를 하여 이 일을 진실로 들은 이스라엘 군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반항함으로 여호와가 노하여 그 백성을 40년간 더 방랑하게 하는중 이 족속에게 격멸을 당하였다(민14:45

 

5) 발람 선지는 "지금은 아말렉이 열방중에 으뜸이나 종말에는 멸망하리라" 예언하였다(민24:20).
6) 사사시대에 미디안과 동맹하여 이스라엘에 쳐들어와 7년을 괴롭히다가 기드온이 일어나 모두 격멸하엿다(삿6:3,7,1:19-21).
7) 사울왕에게 한때 격멸함을 당하였다(삼상15:7-8).
8) 다윗이 블레셋에 있다가 시글락에 갔을때 아말렉이 시글락에 침입하여 온 성을 불사르고 부녀들을 사로잡아 가는중 자기의 처자들도 잡혀갔으므로 다윗이 4백명 군사를 거느리고 추격하여 자기의 처자와 약탈 당하였던 모든 물건을 도로 찾아 올뿐 아니라 아말렉인의 우양을 노략하다가 그 친 구 유대 장로들에게 보냈다(삼상30:1-20).
지금은 이스라엘 나라 지역에 들어있다.

 

 

 왜 하나님은 아말렉과 대대로 싸우겠다고 하셨는가? (Scrap from: http://www.openprayer.com/)

왜 하나님은 아말렉과 대대로 싸우겠다고 하셨는가?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으로 광야에서 전쟁을 하는 기록이 나온다. 아말렉 족속이 공격한 것이다. 모세는 이 전쟁에서 하나님의 지시대로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9절)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12절)리고,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13절)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전쟁 후에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14절)고 하시고, 또한,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16절)고 하셨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아말렉에 대한 극도의 분노를 나타내셨는가? 아말렉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아말렉이 한 일은 무엇인가?

아말렉은 야곱의 쌍둥이 형인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아들이었다(창 36:12, 15-16; 대상 1:36). 그러니 아멜렉은 에서의 손자로서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과는 혈족이었다. 에서의 후손이 건설한 에돔 왕국은 이스라엘 민족보다 훨씬 일찍 왕권 체제를 형성하여 전술과 병력에 있어서 뛰어난 호전적인 민족이었다(창 36:31 참조). 아말렉 족은 그 중에서도 그 이름의 뜻 자체가 “호전적인”이란 뜻을 지닌 족속이었고, 시내 반도의 “남방 땅에 거하고”(민 13:39) 있었다.

그런데 이 때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은 단순한 약탈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들의 공격은 하나님에 대한 의도적이고 참람한 도전이었다. 아말렉 족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시고(출 16장), 생수를 주신(출 17:1-7) 직후였다. 이것은 현저하게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래서 모세는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신 25:18)한 연고라고 하였다. 화잇(E. G. White)도 “저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멸하고자 노력한 것은 그분께 대한 저들의 증오와 도전을 나타낸 것이었다”(PP, 300)고 하였다.

무엇보다도 16절의 난하주는 그들의 공격의 성질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 난하주에 의하면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여호와의 보좌를 치려고 손이 들렸으니”로 번역될 수 있다.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의 중심인 “여호와의 보좌”를 치려고 한 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정면 도전인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사 14:13)고 한 루스벨의 정신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발람이 “아말렉은 열국 중 으뜸이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민 24:20)라고 예언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이 예언은 루스벨의 운명인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사 14:12)라는 선언과 근본적으로 같은 내용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금 아말렉의 공격 속에서 루스벨의 정신을 보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14절)고 하셨고, 그와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16절)고 하신 것이다. 그것은 곧 아말렉으로 나타난 사단에 대한 하나님의 선전포고인 것이다.

훗날 사울이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진멸하라”(삼상 15:2-3)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도 제사를 핑계로 좋은 물건을 남겼을 때, 사무엘 선지자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 15:22)는 저 유명한 말을 하면서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라”(26절)고 선언한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아말렉의 공격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의도적이며 교만한 도전이었다. 그래서 모세는 전쟁이 끝난 후, 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라고 하였다. 닛시라는 히브리어는 ‘깃발,’ ‘기,’ ‘정복자’ 등의 뜻이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이 구절을 “야훼의 사령기를 향해 손을 들자”라고 번역하였다. 고대의 전쟁에서는 ‘기’는 곧 ‘승리’를 의미하였다.

기타 자료: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DTkP&articleno=282&categoryId=17&regdt=20120117114825

성경연구 No 7 아말렉 족속

 

출애굽 때 아말렉 족속은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이 때 여호수아는 군대를 이끌고 나가 싸우고 모세는 산위에 올라가서 팔을 들고 중보합니다.

 

 

 

아말렉은 누구인가?아말렉이 처음 나오는 곳은 창세기 14장입니다.그러나 아말렉을 에서의 후손으로 보는것이 타당하다고 생각 되어집니다.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창 36:12) 아말렉의 뜻은 ‘골짜기의 거주자’입니다.

아마도 민족형성기에 그들은 골자기에 거주했던 것 같습니다.골짜기에 거주했다면 농업활동이 불가능했을 것이고 약탈로 살아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스라엘 민족과의 첫 만남! (출 17장)

이스라엘과의 첫 접촉은 출애굽 이후 르비딤에서 이뤄집니다.아말렉은 이스라엘을 치고 노략질합니다.이 때 여호수아는 칼로 아말렉을 쳐서 파합니다.아말렉의 죄가 심각한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스라엘에게 악을 행하였습니다.그것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피곤할 때 행렬에서 떨어진 가장 약한 자들을 뒤에서 치고 노략했다는 것 입니다.“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신 25:18)

 

이 방법은 영적인 전쟁에서 사단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입니다.하나님이 구원 사역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처럼 사단은 그 사역을 저지시키기 위하여 아말렉을 선택했습니다.두 민족의 싸움은 어느 한 쪽이 멸망해야 끝이 나는 싸움입니다.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라고 명하신 것 입니다.“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신 25:19)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라고 맹세하십니다."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출 17:16)하나님께서 대대로 싸우시겠다고 맹세하실 만큼 중요한 이유는 사단이 그 민족을 선택했기 때문이고 인류의 구원사역을 방해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아말렉 진멸 명령!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기 좋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에게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삼상 15:2-3)

 

사울에게는 충분한 군사가 있었고 모든 상황이 부족함이 없었습니다.그러나 사울에게는 우선순위가 바뀌었습니다.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 보다 노략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게 됩니다.이 일로인해 진멸하는 일에 실패합니다.“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삼상 15:9)

 

사울왕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아말렉에 대한 진멸(도말)계획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사울왕은 아말렉 진멸 명령이 얼마나 중요한지 충분히 알 것 같은데 사울왕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살아 남은 아말렉 족속과 이스라엘의 크고 작은 싸움은 계속 됩니다.

 

 

위기!

아하수에로 왕이 통치하던 때입니다. 도성 수산에 한 유대인이 있습니다. 이름은 모르드개 입니다.그는 사울왕이 속했던 베냐민 지파입니다. 모르드개는 사울왕의 아버지 였던 기스의 증손이며 시므이의 손자이며 야일의 아들입니다.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저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소자요 야일의 아들이라”(더 2:5) 그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붙잡혀 왔습니다.

 

 

하만이 등장합니다.그는 아말렉 왕 아각왕의 후손입니다.왕의 모든 대신들이 하만에게 꿇어 절 하지만 모르드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그가 아말렉 후손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왕의 신복이 여러 번 하만을 향해 무릎 꿇고 절할 것을 권하되 모르드개는 자신이 유다인임을 고합니다. 이 말이 하만의 귀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하만은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은 경하다고 하고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합니다.

 

모함을 통해 왕의 허락을 받아냅니다.

“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부쳐 왕의 각 도에 보내니 십이월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노소나 어린 아이나 부녀를 무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이 명령을 각 도에 전하기 위하여 조서의 초본을 모든 민족에게 선포하여 그 날을 위하여 준비하게 하라 하였더라”(더 3:13-14) 유대인 모두가 진멸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반전!

에스더를 통해 왕은 추가로 조서를 발행하게 되는데 함께 모여 스스로를 보호하라는 것 이었습니다.

“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저희로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도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저희를 치려하는 자와 그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더 8:11) 이 조서로 인해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게 되는데 칠만 오천 명을 죽입니다.

“왕의 각 도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를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인을 도륙하되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더 9:16) 특징 중에 하나는 왕의 조서에는 재산 탈취가지 할 수 있게 허락 했는데 유대인들은 그들의 재산에는 손대지 않았습니다. 사울왕의 행위와 상반됩니다.두 민족의 오랜 싸움은 여기서 끝이 납니다.

 

1. 아말렉이 심판을 받은 이유 (출처 http://www.biblenara.org/q&a/Q30.htm)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징계하겠다고 선언하신 것은 사울이 왕이 되기 약 400년 전이었습니다. 약 400년 전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며 고통을 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학정에서 구해주셨습니다. 이때에 이스라엘은 노예 집단이요 오합지졸에 불과했으며, 어린아이와 노인, 그리고 여인 할 것 없이 모두 이끌고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는 광야를 방황했습니다. (출 17장8-16)을 보면 이스라엘이 르비딤에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그 곳에서 마실 물이 없어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바로 그 때에 아말렉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기습했습니다. 그들은 무지비하게 이스라엘을 쳐서 죽이고 전멸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애굽 노예 생활에서 겨우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무 이유없이 기습하여 전멸시키려고 했습니다. 물론 이 때에 모세의 기도와 여호수아의 활약으로 이스라엘은 그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전쟁이 끝난 후에 모세에게 아말렉을 이 땅에서 전멸시킬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출 17:14). 그러나 그 이후로도 아말렉은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했으며,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선언이 있은 후에도 하나님은 아말렉을 위해 400년이나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아말렉의 죄악은 그대로 둘수 없을만큼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아말렉의 죄는 이스라엘을 친 것 뿐 아니라, 그 자체적으로도 그대로 둘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공의를 시행하기 위해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삼상 15:2-3).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치라고 명하신 것은 아말렉이 우상을 섬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은 수백년 동안 아무 이유도 없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많은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도덕적 윤리적으로도 크게 타락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멸하라던 하나님의 명령은 공의를 시행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 시킨 것과 비슷합니다. 그 땅의 유아와 여인, 그리고 짐승까지 죽이도록 명령한 것은 이미 그 땅에 쌓인 죄악으로 인해 그 땅 전체가 정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그 명령을 어겼습니다. 이 경우 사울 왕은 마치 경찰관이 사형수를 살려둔 것과 같은 죄를 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형을 집행하도록 위임 받은 사람은 그 형을 집행해야만 합니다. 만일 사형집행인이 죄수가 불쌍하다고 살려두면 그 사람 역시 죄인이 될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사울 왕의 죄가 바로 이러한 죄였습니다. 

2.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에 무지비하게 유아와 여인, 그리고 짐승까지 죽이게 한 것은 이미 그 땅에 죄가 가득 차서, 더 이상 그대로 둘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사형 집행인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사형 선고를 내린 사람들의 형을 집행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가나안 족속 중에서 순순히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용납한 사람들은 살려주셨습니다. 그 예가 바로 기생 라합과 기브온 거민(수 9장)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인정하고 구원해 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에 죽지 않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가나안 족™“들은 하나님이 세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공격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심판을 그대로 시행하셨습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이 무조건 이스라엘 편을 드시는 분은 아닙니다. 이것은 경찰이라도 죄를 범하면 형벌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간이 하나님께 드릴 물건을 훔쳤을 때에 즉시 이스라엘이 사형 집행을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3000명 밖에 안되는 아이 성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처절하게 패배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저지른 범죄 행위가 해결될 때까지 이스라엘이 사형 집행을 하지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후에 북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고, 간음하고, 도적질 하고, 불법을 저지르게 되었을 때에(가나안 족속과 비슷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잔인한 앗수르를 시켜서 이스라엘을 철저하게 파괴하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나안을 칠 때와 같이 앗수르를 통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남 유다가 비슷하게 타락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바벨론을 시켜서 이스라엘의 성과 성곽을 태우시고, 왕의 눈을 뽑고, 왕후는 나체로 포로로 끌려가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나 이방인 모두를 공정하게 대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사랑하시고, 또 그들이 저지른 불법에 대해서는 공정하게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방인과 자기 백성이 저지른 죄가 비슷할 때에 이방인보다는 자기 백성을 먼저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거역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치시고, 1900년 가까이 나라를 잃고 방황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나왔던 아시아 7교회가 지금은 잡초 더미로 변해 있으며, 타락했던 유럽과 미국의 교회 건물이 관광명소나, 쓸모없는 건물로 변하게 하신 것, 역시 공의로우신 하나님 때문입니다. 요즈음 우리 한국 교회 역시 심각한 타락에 빠져있다는 목소리가 자주 들립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죄와 세상의 죄가 비슷할 때에 교회를 먼저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적어도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세상 보다 나아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5. 이러한 점에서 보면 하나님은 다른 종교인이라고 해서 차별 대우 하시거나, 기독교인이라고 해서(물론 예수를 믿으면 구원은 받겠지요), 무조건 잘 대해주시지는 않습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경고를 무시하는 교회에서 촛대를 옮기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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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다윗을 보라.


사무엘상을 보며 다윗에게서 참 많은 점을 배운다. 

그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원리를 알았다. 


#1

하나님은 우리가 원수를 직접 갚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다윗의 은혜를 모른척 한 나발은, 아비가일의 말로 다윗이 그를 치지 않자, 결국 스스로 고꾸라져 죽고 만다.

다윗은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을 갚아 주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나발의 악행을 그의 머리에 돌리셨도다" (삼상 25:39) 로, 하나님의 공의를 경험한다. 


또한 그는 자신을 이유 없이 죽이려한 사울에 대해서도 스스로 재판하지 않는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굴에서, 그의 진영에서) 주어지지만 그는 사울을 살려보낸다. 


같은 상황에서 아비새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26:8)로 이해하지만,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신"(26:11) 일로 판단한다. 

따라서 그는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하나님이 직접 사람을 재판할 것임을 믿고 스스로의 손은 거둔다. 


#2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신다" (26:23)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 사울에 쫓겨가고, 몇 번이나 죽을 순간을 넘기지만, 언젠가는 여호와께서 갚으실 것이라는 믿음을 변치 않았다.


동시에 "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26:24) 라며, 하나님이 일하시는 원리를 다시금 드러낸다. 하나님은, 우리가 남의 죄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다윗을 보며 내가 살아갈 원리를 다시금 배운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라도,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기대하며 잠잠히 기다리리라. 

떄로는 내가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최적의 기회가 와서-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 생각되더라도, 

나는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결정을 해야겠다. 


그 때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며, 그 공의로우심을 드러내실 기회가 드려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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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23:14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 사무엘 상을 보면 계속해서 사울도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그를 돕는 이에게 여호와의 축복을 구하기도 하고, 그를 돕지 않는 자에게 저주를 하기도 합니다. 같은 하나님을 두고, 사울과 다윗의 삶은 이리도 다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그일라를 구할지 말지, 도망을 갈지 말지, 그일라 사람들이 자신을 사울에게 내어줄지 말지. 

그 모든 선택의 기로 앞에 그는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은 대답하십니다. 


주님, 내가 하나님 앞에 다윗과 같은 자이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그 이름의 은총과 저주를 내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 자가 아니라, 

또한 하나님께 묻지 않고, 점쟁이들에게 묻듯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에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아내라 다그치는 자가 아니라. 

다윗처럼 하나님과 교제가 있길 원합니다. 


다윗도 그와 함께 했던 아비아달이라는 제사장이 있었으나,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가 아님을 알고(혹은 준비가 덜 된. 마지막 아비아달은 사독 제사장과 달리 패망의 길을 걷는다) 다윗은 스스로 하나님께 묻고, 듣고, 행합니다. 그처럼, 때로 내가 누구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지 못할 때에는 직접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 되길 원합니다. 


오늘은 조금 게으르게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맡은 일들을 충성을 다해서 하기 원합니다. 

주님, 수 많은 사울의 계략으로 인해 다윗은 긴 기간동안 도망다녀야 했지만, 하나님은 결코 다윗을 사울에게 넘기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의 겸손케 하시는 이유, 주만 의지하는 연습, 또한 내가 모르는 여러가지 이유로 광야의 길을 헤매며 있지만, 결코 믿는 자에게 패망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며, 내 중심을 아시며, 내 손을 붙들고 가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나를 하나님의 손에서 버리지 말아주소서.

내가 내 최선을 다하여 경건하고, 거룩하고, 하나님의 손에 쓰시기 좋은 종이 되기 원하나이다.

주님의 것으로 온전히 속한 자, 주님께만 묻는자, 묻고 듣고 행하는자 되기 원합니다. 


나를 온전한 주의 것 되게 하여주소서. 

나의 삶을 인도하여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연언니의 어머님과, 

동현이와 그 부모님의 구원, 

성학이와 그 할머님의 구원, 

용범오빠의 적응과 운경언니의 건강과 학업, 

지현이의 삶, 

준호의 신앙과 진로,

좌니의 하나님과 동행함, 

신영이와 보현이의 신앙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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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2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것이요. 


왕을 달라는 이스라엘의 요구에 의해 사울을 왕으로 세운 이후 사무엘이 죽기 전 하는 말이다. 

그는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을 꾸짖은 후, 그 추수기간에 우레와 비를 내리게 한다. (혼을 낸다)

그러나 그 꾸짖음에 슬퍼하는 이스라엘을 다시 이 말로 위로한다. 


(삼상 12:19)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삼상 12:20)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삼상 12:21)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삼상 12:22)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삼상 12:23)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삼상 12:24)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하나님, 내게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예배 중에 참 힘이 없었어요. 그러나, 그 힘없음은 하나님이 힘이 없으심이 아니요, 우리의 죄악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믿는 자의 성전이 교회이니 우리는 교회를 팔아도 괜찮다. 기도하는 자가 없고, 눈도 문제이고, 돈도 없으니 새벽기도를 방학중 없앤다. 성탄절도 주일예배만 드린다. .. 


제가 믿음이 없고, 참 본질을 깨닫지 못해서 이 말들이 힘이 빠지는지 

혹은 하나님이 명하신 모이기를 힘쓰라, 예배하라- 라는 말에 어긋되는 방향으로 교회가 나아가는 것 같아서

내 안의 성령님이 근심하심이 내게 전해져서 힘이 빠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심은 확신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그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도 확신하며, 

그 이름을 위해서라도 나와 우리 교회를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도 확신합니다. 


주님, 이 사실을 fact로 내 마음에 받고, 

우선 주어진 상황 가운데 중보하며 최선을 다하여 살게 하소서.

다만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일하실 수 있도록, 기도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고 기대하게 하소서.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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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9장을 읽으며 드는 생각들


1. 하나님은 어리석은 인간의 요구라도 때로 그 간절함에 응답하신다. 

- 왕을 달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는 어리석은 것이었고, 왕이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요구였다. 그러나 그들의 두려움, 다른 민족들에 비해 '보이는' 왕이 없다는 두려움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고, 결국 하나님은 사울이라는 청년을 통해 왕정을 시작하신다.


2. 사울도 겸손한 자였다.

- 그는 사무엘의 처우 앞에 (30인이 모인 식탁의 상석을 준다거나, 미리 준비한 고기를 준다거나, 이스라엘이 기다려온 자라는 말 앞에) 자신은 이스라엘 지파중 작은 베냐민 지파, 그 중에서도 가장 약한 집안의 아들일 뿐이라고 소개한다. 그도 처음 하나님의 부르셨을 당시에는, 본인이 누구인지를 아는 젊은이였다. 훗날, 그의 탐욕과 교만이 스스로를 타락시켰다.


3. 하나님은 일하신다. 

-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사울을 보내기 위해, 암나귀들을 잃어버리는 상황을 주셨고, 사울은 동물을 찾기 위해 헤매다가 사무엘을 만나게 된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 앞에 고난과 같은 상황을 주시지만, 이는 내 next step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관문이기도 하다. 

- 내 삶에서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길을 잃은 상황'과 같다고 느껴지는 순단은 언제일까? 

논문을 하나도 쓰지 못하는 것 같은 지금 내 심정이 바로 그 순간이 아닐까?


주님.. 내게 지혜를 주시고, 이 상황이 하나님의 total control안에 있다는 고백을 하게 하소서. 또한 이 가운데에서도 소망을 잃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내 이 "정처 없이 헤매이는" 순간들 역시, 하나님 손 안에서 안전하다는 것을 고백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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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무엘은 나이가 들자 자기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웠습니다.
2.맏아들의 이름은 요엘이고 둘째 아들의 이름은 아비야입니다. 그들은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됐습니다.
3.그러나 사무엘의 아들들은 사무엘이 걸었던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당한 이득을 따라 뇌물을 받고 옳지 않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4.그래서 모든 이스라엘 장로들은 라마에 있는 사무엘을 찾아갔습니다.
5.그들이 사무엘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늙었고 당신 아들들은 당신이 행한 길을 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왕을 세워 주셔서 다른 모든 나라처럼 왕이 우리를 다스리게 해 주십시오.”
6.왕을 세워 다스리게 해 달라는 말을 들은 사무엘이 마음이 언짢아 여호와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7.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백성들이 네게 하는 말을 다 들어주어라.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 내가 그들의 왕인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8.내가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그렇게 해왔다. 그들이 나를 제쳐 두고 다른 신들을 섬긴 것처럼 네게도 그러는 것이다.
9.그러니 그들의 말을 들어주어라. 그러나 그들에게 엄중하게 경고해 왕이 어떤 권한이 있는지 알게 해 주어라.”
10.사무엘은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는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11.“너희를 다스릴 왕은 이렇게 할 것이다.
그는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마차와 말을 돌보는 일을 시키고 그들을 마차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다.
12.그가 너희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으로 세울 것이며 자신을 위해 밭을 갈고 추수하게 할 것이고 전쟁을 위한 무기와 마차의 장비를 만들게 할 것이다.
13.또 너희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사람요리사, 빵 굽는 사람이 되게 할 것이다.
14.그는 너희 밭과 포도밭과 올리브 밭 가운데 제일 좋은 것을 골라 자기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15.너희 곡식과 포도 수확물의 10분의 1을 가져다가 자기의 관리와 신하들에게 줄 것이다.
16.너희 남종들과 여종들과 너희 소년들과 나귀들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키고
17.너희 양들의 10분의 1을 가질 것이며 결국 너희 자신도 그의 노예가 될 것이다.
18.그때가 되면 너희는 너희가 선택한 그 왕에게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울부짖겠지만 그때는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에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다.”
19.이렇게 말했지만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오. 그래도 우리는 왕을 원합니다.
20.다른 나라들처럼 우리를 다스릴 뿐 아니라 우리를 이끌고 나가 싸워 줄 왕이 있어야 합니다.”
21.사무엘이 백성들의 말을 모두 듣고 여호와께 다 말씀드렸더니
22.여호와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그들의 말대로 그들에게 왕을 세워 주어라.” 그러자 사무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모두 자기 성으로 돌아가 있으라고 말했습니다.


* 하나님이 나의 왕이시다. 

* 다른 나라들, 다른 사람들, 다른 학생들, 다른 성공들을 쫓지 않길 원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온전한 계획표를 충실히 따르기 원합니다. 

* 하나님이 주시는 베스트를 듣고, 순종하리라. 내가 원하는 것을 고집할 때, 하나님은 때로 허락하신다. 그러나 그 또한 버리심이 아니며, 돌아가게 하심이다. 광야와 같이. 

*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백성은 주께로 돌아오며, 주의 큰 통치 가운데 거하게 된다. 


주님, 나로하여금 하나님이 왕이심을 잊지 않게 하소서.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믿게 하시고, 주님께 귀 기울이게 하소서.

하나님만이 나를 다스리심을 알게 하시고, 

각자의 다른 하나님의 계획표를 부러워하지 않고 나는 내 길을 걷게 하소서.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이 내 삶을 rule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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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

NASB 

 21. 그러므로 눈이 손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라고 말하거나 머리가 발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22. 이뿐 아니라 더 약해 보이는 몸의 지체들이 오히려 중요합니다. 23. 그리고 우리가 몸 가운데 덜 귀하다고 생각되는 지체들을 더 귀한 것으로 입혀 주어 우리의 볼품없는 지체들은 더 큰 아름다움을 갖게 됩니다.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들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을 고르게 짜 맞추셔서 부족한 지체에게 더 큰 존귀를 주셨습니다. 25. 그리하여 몸에서 분열이 없게 하시고 지체들이 서로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하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또한 그 몸의 지체입니다.

21. And the eye cannot say to the hand, "I have no need of you"; or again the head to the feet, "I have no need of you." 22. On the contrary, it is much truer that the members of the body which seem to be weaker are necessary

23. and those [members] of the body, which we deem less honorable, on these we bestow more abundant honor, and our unseemly [members come to] have more abundant seemliness, 24. whereas our seemly [members] have no need [of it.] But God has [so] composed the body, giving more abundant honor to that [member] which lacked, 25. that there should be no division in the body, but [that] the members should have the same care for one another. 26. And if one member suffers, all the members suffer with it; if [one] member is honored, all the members rejoice with it. 27. Now you are Christ's body, and individually members of it. 


21. And the eye cannot say to the hand, "I have no need of you"; or again the head to the feet, "I have no need of you." 


22. On the contrary, it is much truer that the members of the body which seem to be weaker are necessary


23. and those [members] of the body, which we deem less honorable, 

on these we bestow more abundant honor, 

and our unseemly [members come to] have more abundant seemliness, 


24. whereas our seemly [members] have no need [of it.] 

But God has [so] composed the body, giving more abundant honor to that [member] which lacked, 


25. that there should be no division in the body, but [that] the members should have the same care for one another. 


26. And if one member suffers, all the members suffer with it; if [one] member is honored, all the members rejoice with it. 


27. Now you are Christ's body, and individually members of it. 


하나님, 우리 마하나임에도, 우리 사랑방에도, 약해보이는 지체가 더욱 귀하고, 중요하다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필요가 없어보이는 때에도, 오히려 그들을 돌아보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소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composed 하셨다는 그 말씀을 붙들고 나아갑니다. 주님, 내게 하나님의 마음을 주소서.

우리의 불화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 않길 원합니다. 찬양하기 합당한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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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여러분이 나에 대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고 또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대로 전통을 굳게 지키므로 내가 여러분을 칭찬합니다.
3.이제 나는 여러분이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며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기 원합니다.
4.누구든지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5.또한 누구든지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머리를 민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6.만일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으려면 머리를 깎으십시오. 그러나 머리를 깎거나 미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면 머리를 가리십시오.
7.남자는 머리에 무엇을 쓰면 안 됩니다.
= 이는 그가 하나님의 형상이요,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 남자의 영광입니다.
8.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기 때문입니다.
9.또 남자가 여자를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해 창조됐습니다.
10.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 때문에 그 머리 위에 권위의 표를 둬야 합니다.
11.그러나 주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가 있을 수 없고 여자 없이 남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12.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의 몸에서 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습니다.

내용관찰
1. 바울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성을 어떻게 설명합니까?(3절) 여자는 그 근원이 남자에게로서 났음 
2. 바울이 더불어 말하는 남녀 관계의 본질은 또 무엇입니까?(11~12절) 두 사람이 하나님 아래에서 공동으로 속함

연구와 묵상
3. 머리에 쓰는 문제에 있어서는 왜 남자와 여자에게 차이가 있습니까? 순종의 표인 머리에 쓰는 것은 여성에게만 허용됨

느낀점
4. 남녀의 평등을 말하면서도, 그 문화적 구별을 지키라는 가르침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결단과 적용
5. 내 주변에 남녀의 구별과 관련해 어떤 도전이나 문제가 존재합니까?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합니까?


길잡이

하나님께서는 남녀를 본질적으로 동등하게 만드셨고, 복음은 남녀 차별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이는 남녀의 구별이나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문화에 의하면 여성들은 예배 때 머리를 옷이나 천으로 가려야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이것이 남녀를 차별하는 것이 아님을 가르칩니다. 바울은 교회의 전통을 무시해서는 안 되고(2절), 남자와 여자가 구별되게 창조됐으며, 그 안에 질서가 있기에 여성이 머리를 가리는 것이 옳다고 가르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권능과 영광에 있어서 동등하시나 그 질서를 갖고 계시듯이,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도 영적인 질서가 있고, 그것이 표출된 문화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는 앞서 우상 제물을 먹어도 되느냐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옷차림에 있어 다른 이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살고 있던 문화를 부정한다면 믿음이 약한 자들이 넘어질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처럼 모든 영역에서 남을 배려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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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지식이 있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모두를 이롭게 합니다.

2. 만일 누가 무엇을 안다고 자만하면 그는 아직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알아주십니다.

4. 그러므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해 말하자면 세상에 있는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신은 하나님 한 분밖에 계시지 않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5. 비록 하늘이나 땅 위에서 신이라 불리는 것들이 있어 많은 신들과 많은 주들이 있으나

6. 우리에게는 오직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실 뿐입니다. 만물이 그분으로부터 왔고 우리도 그분을 위해 있습니다. 또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니 만물이 그분으로 인해 존재하고 우리도 그분으로 인해 살아갑니다.

7.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도 우상숭배하는 습관에 젖어 있어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을 때 정말 우상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므로 그들의 양심이 약해지고 더러워집니다.

8.그러나 음식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워 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먹지 않는다 해도 해로울 것이 없고 먹는다 해도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9. 그러므로 여러분의 이 자유가 연약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10. 지식이 있는 당신이 우상의 신전에 앉아서 먹는 것을 누가 보면 양심에 거리낌이 있으면서도 용기를 얻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지 않겠습니까?

11. 그러면 그 연약한 사람은 당신의 지식 때문에 망하게 됩니다.

12. 이와 같이 여러분이 형제들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에 상처를 주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일입니다.

13.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넘어지게 한다면 나는 내 형제를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을 것입니다.


1. Now concerning things sacrificed to idols, we know that we all have knowledge. 

Knowledge makes arrogant, but love edifies.

2. If anyone supposes that he knows anything, he has not yet known as he ought to know;

3. but if anyone loves God, he is known by Him.

4. Therefore concerning the eating of things sacrificed to idols, 

we know that there is no such thing as an idol in the world, and that there is no God but one.

5. For even if there are so-called gods whether in heaven or on earth, as indeed there are many gods and many lords,

6. yet for us there is [but] one God, the Father, from whom are all things, and we [exist] for Him; 

and one Lord, Jesus Christ, by whom are all things, and we [exist] through Him.

7. However not all men have this knowledge; but some, being accustomed to the idol until now,

 eat [food] as if it were sacrificed to an idol; and their conscience being weak is defiled.

8.But food will not commend us to God; we are neither the worse if we do not eat, nor the better if we do eat.

9. But take care lest this liberty of yours somehow become a stumbling block to the weak.

10. For if someone sees you, who have knowledge, dining in an idol's temple, will not his conscience, 

if he is weak, be strengthened to eat things sacrificed to idols?

11. For through your knowledge he who is weak is ruined, the brother for whose sake Christ died.

12. And thus, by sinning against the brethren and wounding their conscience when it is weak, you sin against Christ.

13. Therefore, if food causes my brother to stumble, I will never eat meat again, that I might not cause my brother to stumble.


-----

늘 말씀은 나를 챌린지합니다.

내가 약한 부분을 돌아보게 하고, 마주보게 합니다. 

또한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며 가르침이니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이번 주일은 자유에 대한 것입니다. 그 자유가 사랑에 근거한 것이냐, 배려하는 자유이냐에 대한 물음, 특별히 믿음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돌아볼 때에 필요한 물음입니다. 내 안에 믿음이 약한 자, 혹은 감정적으로 약한 자를 배려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고 회개합니다. 그러기 위해 더 사랑해야 했고, 내 행동을 조심했어야 했는데, 사랑없는 자를 비난하기 위해 나도 사랑이 없기로 작정했었네요. 


그런 부분을 주님이 깨닫게 하시는 것이라 생각하고, 형제를 돌아보고 사랑하는 것을 이번 주일예배의 메세지로 담겠습니다. 

하나님, 약하고 부족한 나를 이해해주시고, 동시에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도 알아주시는 주님, 내가 말씀의 반석 위에 바로 서도록, 나를 세워주시고 내 마음을 강건케 하소서. 형제를 사랑하기 너무 어려운 환경이지만, 용기를 내어 형제를 사랑하기 원합니다. 


말씀이 명령하실때, 아무도 핑계치 못합니다. 주님, 그러기 위해 우리 마하나임 안에서부터 사랑의 마음이 흘러넘치도록 이번 한 주 중보하겠습니당......... 휴 어렵지만요. 하나님이 도와주세요 :)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 교회에도 퍼져나가길, 갈라진 관계들 가운데 하나님이 명령하신 형제 사랑이 곳곳에 들어가길 축복합니다.

내 손길 가운데, 머리와 마음 가운데 함께 해주셔서,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곡을 하도록,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선곡,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영의 흐름이 되도록 해주세요 :)


하나님, 다시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채워넣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그 연약한 사람은 당신의 지식 때문에 망하게 됩니다.

정말 무서운 말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내 지식이 누군가를 망하게 한다는 것은요.

주님, 이 소비의 시대에 지식도 하나의 소비대상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지식이 '많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무시하기 마련이고, 그것을 잣대로 여러 사람들을 평가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지식은, 이제 기독문화 가운데에서는 신앙의 지식을 포함합니다. 


주님, 내 길을 인도하시는 주님. 혹여라도 내 지식이 하나님의 사람을 망하도록 하지 않길 원합니다. 

주님. 이번주 예배를 위해 기도합니다. 여러가지 교회에 대한 걱정들이 우리 교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걱정해야 할 것은, 우리 안에 서로가 하나인가- 교회의 영적 리더를 충분히 세워드리고 있는가-, 서로를 판단하고 있지 않은가의 질문 앞에 가져야 할 두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 안에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가득하게 하시고, 그것이 지식에서 그치지 않게 하소서. 교회를 주님 앞에 이끄는 마음을 주시고, 우리 안에 서로를 세우고 사랑하며 보듬는 마음이 먼저 있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일 예배를 통해 부르는 노래가, 우리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그 관계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형식이나 방식이나 기관적인 그 무엇이 아니길 소망합니다. 교회 건물이 없더라도, 우리 예배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genuine 한 그룹, 사랑으로 하나된 참된 예배자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 소망을 노래하기 원합니다. 


오늘 곡들을 살펴보는 제 마음을 주님이 깨끗케해주시고, 온전히 한 마음 한 뜻으로 예배드리는 시간되도록 이 선곡의 손과 마음 가운데 성령님이 인도해주시옵소서. 


- 약한자를 보듬는 찬양

- 하나님 안에 하나 됨

- 하나님을 찾는 자를 하나님이 알아주심

- 세상 천하에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신이심

- 감사 찬양

- 거룩함: 내 삶의 작은 부분이라도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드리는 삶

E 형제의 모습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와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메마른 땅에 샘물 나게 하시기를 가난영혼 목마른영혼 당신을 통해 주사랑 알기 원하네 


G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하는 말일세 G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 

E 감사함으로 (여호와를 즐거이 불러)

E 예수님 그의 희생 기억할때 자기몸 버려 죽으신주 나항상 생명주신 그 은혜를 마음에 새겨 봅니다. 주달리신 십자가를 내가 볼때 주님의 자비 내 마음을 겸손케해 주께 감사하며 내생명 주께 드리네 / 감사드리리 주의 십자가 나의 친구 되신 주 

C 예수 닮기를 



E 예수님 그의 희생 기억할때 https://www.youtube.com/watch?v=kUrMQYKraj8

E 감사함으로 https://www.youtube.com/watch?v=x3LcvzxpQpo

C 예수 닮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4OKVdaS2iCY

https://www.youtube.com/watch?v=20BTHV8jHrk

G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https://www.youtube.com/watch?v=QIOAYf-k9HA

G 사랑해요 https://www.youtube.com/watch?v=ne5vBL-WJrw





E 나의 마음을 정금과 같이 

F 완전하신 나의 주 , 햇살보다 밝게 빛나는 주의 영광

D 오신실하신주 


F 거룩하신 하나님 주께 감사드리세 날위해 이땅에 오신 독생자 예수 내가 약할때 강함주고 가난할때 우리를 부요케하신주 감사 

G 내눈 주의 영광을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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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를 드리며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어제는 왜 그리 마음이 어려웠을까요?

아마도 내가 힘들어하는 "관계"의 문제가 겹쳐지며, 마음이 상했나봅니다. 


하나님. 내게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고, 내 안의 이기적인 마음들이 하나님 앞에 부서지도록 해주세요.

회개합니다.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비난하고 미워합니까. 

내 부족함으로 기인한 어려운 관계들을 인정하고, 다시금 하나님 앞에 내 삶의 자세들을 다잡습니다. 

특별히 약속에 대해, forgetful 한 것에 대해 회개합니다.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 주기로 한 것이 있다면 상대방이 묻기 전에 미리 주는 것- 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시 사람앞에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다잡습니다. 혹시 나의 forgetful 한 습관으로 인해 마음이 아픈 사람이 있었다면 하나님이 그 마음을 풀어주게하시고, 내 안에서도 이걸로 인한 묶임이 풀어지도록 하소서. 예배를 지키라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내 감정으로 인해 무시하거나 지워버리지 않도록 하소서. 


사람에 대한 어떠한 욕심도 내려놓습니다. 

그저 나무처럼 하나님이 보내주는 사람이 오면 마주앉아 대화하고, 떠나면 떠나도록 하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내가 누군가와 반드시 친해질 필요도 없고, 하나님이 붙여주시는 사람은 붙여주시는 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오랜 유학생활에서 올 수 있는 외로움이 나의 삶을 불편하게 하지 않되, 사랑과 감사가 넘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마하나임이든, 사랑방이든, 또 다른 누구이든. 내게 기도제목을 준 사람을 기억하며 기도하기 원합니다. 

주연언니, 신영이, 빅토리아, 성학이, 좌니, 준호, 보현이, 동현이, 운경언니, 용범오빠, 지현이, 

재관오빠, 호수오빠, 석천오빠, 승훈이, 문주, 태형이, 예진이 상옥이, 민기, 진호, 정진이, 

민수와 한준이, 김원희 장로님과 목사님, 가연이와 철호오빠, 왕효, 탐선생님, 김진숙 박사님, 서경혜 선생님, 

성혜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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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기드온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또 살아갈 용기를 냅니다.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던, 두려움과 걱정가운데 살았던 소심한 기드온에게 주의 사자가 다가가 '용사여'라고 부르신 것을 생각합니다. 


나는 너무나 약하고 부족한 자이고, 매일같이 실패하고, 매일같이 포기할까 말까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상당히 긍정적인 저는,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교만했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 가운데 빠져있었을 것 같아요. 


다시금 주님 앞에 섭니다. 

모든 것이 주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오늘을 살아갈 힘을 주시니 그 힘을 의지하여 일어서봅니다. 

하루를 주신다는 의미는, 그 하루를 살아내라는 의미라고 배웠습니다.

오늘 하루, 바보 천치라고 나를 부르는 내게 용사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내가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주님의 능력을 의뢰합니다.


지혜이신 주님, 내게 지혜를 허락하소서.

라이팅이 오전 내에 마쳐지고, 교수님의 오케이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발표 준비가 오후 내에 마쳐지고, 영혼들을 위한 카드를 썼으면 좋겠습니다.

예배 가운데 온전히 감사함으로 나아가고, 

찬양팀의 인수인계도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필요한 것에서, 원하실 때 쓰임받을 수 있을정도로

내 삶을 잘 manage 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내게 힘을 주시고

내게 지혜로 임해주시고

내 안에서 일하여주소서. 


또한 저녁에 있을 예배에도 모든 우리 사랑방 지체들이 

기쁜 마음, 기대하는 마음으로 함께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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